목이 잔뜩 쉬었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말을 하려면 곧바로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어렸을 때 영국의 록그룹 스모키의 허스키한 음색에 반해
나도 목이 좀 쉬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허스키 보이스를 만들려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목소리는 점점 더
카랑카랑해지는 거였다. 낭패스러웠다.
그후 나는 내가 목이 쉬지 않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나는 닭들과 하루 종일 대화를 한다.
말이 대화지 실상은 혼자서 주고 받고 다 하는 일인다역의 성우 같다.
이런 식이다.
"우리 새깜지들 잘 잤어요?"
"삐악삐악 삐악삐악"
"음, 잘 잤구나~ 간밤에 안 추웠어요?"
"꼬꼬꼬꼬꼬"
"추웠어? 그럼 엄마가 오늘 밤에 보온등 하나 더 켜줘야겠다, 그치?"
"꾸꾸꾸꾸꾸"
"아라쪄아라쪄. 엄마가 보온등 하나 더 켜줄게요~. 자아, 맘마 먹자."
오계는 야생성이 퍽 강하다.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고 민첩하게 대피한다.
노크를 하지 않고 방문을 열거나,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 혼비백산하기
일쑤다. 몸이 가벼우니 이리 날고 저리 뛰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큰 닭도 예외는 아니지만 어릴수록 증세가 더 심하다.
어린 병아리들은 심지어 밥이나 물을 주고 바닥에 물을 뿌려주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인 움직임에도 일일이 반응한다.
그러니 사료 줄 땐 지금부터 사료를 주겠노라고,
물 줄 땐 엄마가 우리 애기씨들 물 주는 거라고,
소독할 땐 또 소독 좀 하겠다고 일일이 보고를 하고 안심을 시킨 후
결행하는 것이다.
닭은 음파를 기억한다고 한다.
예컨대 여러 마리의 어미닭이 거의 같은 시기에 부화를 해서
한 공간에 살도록 하면 어미닭과 병아리가 서로 섞이게 마련이다.
병아리들이 어미품을 벗어나 서로 섞여 놀다가도
잘 때는 어김없이 제 어미품으로 찾아든다.
구구구구~ 새끼를 부르는 제 어미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의 태교는 알을 부화기에 넣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틈만 나면 부화기 앞에 서서 말을 건넨다.
날씨 얘기도 하고, 내 일정도 들려주고, 육추 준비상황도 브리핑한다.
부화할 때는 스스로 못 나오는 병아리를 도와 알껍데기를 까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들으면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아니, 확실하다.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 자란다.

오늘 낮에 아이들 이약을 만들어 뿌렸다.
곧 장마철이 되면 이가 활동하기 좋은 고온다습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닭에게 이가 생기면 큰 손해가 난다.
첫째 사람에게 옮겨 닭 치는 사람이 괴롭고, 둘째는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먹는 게 살로 안 가고 비들비들 마른다. 암탉의 경우 산란율도 떨어진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생전 처음 보는 흰색 방역복을 입고
약통을 지고 방에 들어가자 병아리들이 크게 놀랐다.
내가 미리 들어가 사전 정지작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는 제 자리에서 높이 떴다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일부는 앞뒤 안 보고
냅다 뛰어올라 창문턱에 매달리고, 일부는 열려진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일부는 방구석으로 우르르 몰려 압사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얼떨결에 창문 밖으로 내팽겨쳐진 병아리 한 마리가 너무 놀란 나머지
착지한 상태로 엉거주춤 서 있다. 내가 다가가도 오금을 펴지 못 하고
얼어붙어 있다. 말로 안심을 시키며 살포시 안아올려 한참동안 달랬더니
그제서야 긴장 풀리는 소리가 스르르 들린다.
오늘도 나는 말한다.
섹시한 허스키 보이스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