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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의 농장일기
작성일 : 12-09-23 14:17
살생의 추억
 글쓴이 : 계모
조회 : 41,755  
가을엔, 나락만 여무는 게 아니라 이도 여문다.
나락은 햇볕을 받아 여물고, 이는 아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여문다.
투명한 몸통에 피가 비쳐 빨갛게 보이는 이도 있다.

비쩍 마른 채 편찮은 표정을 짓고 구석에 쳐박혀 있는 닭을 붙잡아 보면
영락없이 이가 바글바글하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몸 구석구석 가루약을 뿌린 후 아이를 거꾸로 잡고 깻대처럼 흔들면
이가 후드드득 소리를 내며 깨알처럼 쏟아진다.

독한 가루약이 호흡기를 타고 들어와 기침이 난다.
방바닥에 신문지 깔고 앉아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밀림에 고엽제 살포하듯 DDT 뿌리던,
무지했던 어린 날 생각난다.
 
2004년 이맘때 쓴 농장일기- 살생의 추억

오늘은 왼종일 아이들의 '이'를 잡아주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불더니, 바야흐로 '이'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닭은 열이 많은 동물이라서 '이'들에게는 따끈따끈한 닭의 몸이
새끼 키우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입니다.
'이'들이 즐겨 서캐를 까는 곳은 닭의 목과 겨드랑이, 항문 주위입니다.
겨드랑이와 항문 주위에 있는 서캐는 닭을 붙잡아 깃털을 헤집어 봐야
찾을 수 있지만, 목에 있는 것은 금방 눈에 띄지요.
검은 털에 흰 서캐이니 오죽 잘 보이겠습니까?
한 깃, 한 깃, 올올이, 어쩜 그리도 촘촘이 깔아 놨는지,
서캐인지 모르고 보면 '예술'입니다.
흡사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 같습니다.

초보엄마 때의 에피소드.
어느날 한 수탉녀석의 목에 흰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유심히 보니 암탉들도 그렇고, 다른 수탉들도 그랬습니다.
"아, 무슨 전염병인 게로구나"
개중에 목에 '왕 고드름'이 매달린 수탉녀석을 골라 안고
안양에 있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달려갔지요.
당시 그곳 조류질병과장님이 저희 오계 주치의셨거든요.
과장님은 병아리 백신 프로그램도 짜주시고,
아픈 아이 진찰도 해주시고, 약 처방도 내주시고, 닭 기르는 법도 자문해
주셨습니다. (오계가 천연기념물이라고 이 모든 수고를 공짜로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새삼 감사드립니다.)

과장님은 혹시 닭에게 큰 병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하여 몹시 긴장해 있는 나에게
"아니,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하시며
어이없다는 듯 막 웃으셨습니다.
"......???"
"이거 서캐잖아요."
"......^@^......"
어찌나 민망하고 창피하던지.

그 사건 이후 우리 농장에는 닭 목욕탕이 생겼습니다.
땅을 두어자 넘게 파내고 숯을 두툼하게 깐 뒤
그 위에 모래를 한 자 정도 충분히 덮습니다.
숯이 밑에서 습한 기운이 올라오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에
모래가 항상 뽀송뽀송하지요.
오계 목욕하는 장면 한번 엿보실래요?

먼저 두 발로 모래를 파헤쳐서 저 들어갈만하게 구멍을 팝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깃털을 세워 몸을 크게 부풀립니다.
그리고 두 발로 모래를 퍼서 깃털 사이사이, 켜켜로 모래를 끼얹습니다.
몸을 앞으로, 옆으로, 뒤로, 이리저리 뒹굴뒹굴 하면서
몸에 붙어 있는 이와 서캐, 몸 비듬 등을 훑어냅니다.
처음 닭이 목욕하는 모습을 봤을 때도
무슨 간질병 발작이라도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닭 목욕탕은 어느 정도 '이'퇴치에 기여를 합니다.
닭은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 녀석에게 '이'가 생기면 금방 쫙 퍼지는데,
목욕을 열심히 하는 깔끔이들에게는 거짓말처럼 '이'가 없거든요.
다른 방법으로는 '이'약을 타서 닭에게 뿌려줘야 하는데,
약물이 닭의 깃털을 뚫고 들어가 살에 닿게 하려면 고압분무기 같은 걸로
약을 쏴줘야 합니다.
그러면 닭이 크게 놀라기 때문에 '이' 잡으려다 닭잡는 꼴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제가 직접 잡습니다.

'이'에미는 워낙 날쌔기 때문에 아예 잡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목표물은 서캐입니다.
서캐 고드름을 양 엄지 손톱 사이에 넣고 꾹꾹 누르면
찌지직 찌지직 소리를 내며 동글동글한 서캐덩이가 납작납작하게 펴집니다.
박살나는 거지요.
처음에는 징그러운 마음에 몸이 오싹오싹 하더니
지금은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그런대로 재미도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엔 '이'가 참 많았었지요.
몸에도 많았고, 머리에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유행하던 빨간 엑스랑 내복. 남자들 것은 회색이었죠.
내복솔기에 하얗게 깔린 서캐를 등잔불에 대고 그을리면 지지직 지지직 소리가
나면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머릿니가 싸래기 눈처럼 후두둑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이'를 잡겠다며 그 독한 DDT를 머리 위에다
막 뿌리고 그랬잖아요. 금시초문이라구요? 아니면 말구요.

어쨌거나 아이들 '이'잡아 주면서 잠시 어릴적 '살생의 추억'을 떠올려봤습니다.
하루종일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아파서
도저히 더 이상은 못 앉아 있겠습니다.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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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적으로 12-09-26 14:52
답변 삭제  
어려서 따라부르던 구전노래.

눈보라가 ! 휘날리는!  축축한 이불밑에서~ 빤쓰벗고 이를 잡는 홀아비 신세~
왕이는 어디로 가고 서캐이만 남아있느냐 ~아랫도리 박박 긁으면 마누라 생각이 절로 나누나.

너무 리얼한가? ㅋㅋㅋ

형제들중에서도  유독 이가 많았던 저였습니다.열이 많아서 그랬던거 같애요.
목욕 안한거는 다 똑같앴으니까요.ㅎㅎㅎ
계모 12-09-26 17:47
답변 삭제  
강원도 민요인가요? ㅋㅋㅋ
이런 노래 첨 들어 봐요.
정말 리얼하네요.
순리적으로 12-09-26 21:36
답변 삭제  
민요가 아니구요.
흘러간 옛노래,굳세어라 금순아 의 곡에 붙여서 불러보세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축축한 이불밑에서~ ㅋㅋㅋㅋ

그래도 웃어넘겨주시니 다행입니다.
저급하다고 상대 안해주면 어떡허나 쫄고 있었는데.. ^^*
boston 25-03-28 15:22
답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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